※ 디저트 드림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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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사쿠. 이렇게 자주 먹으면 질리지 않아?”
오늘따라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줄 가운데서 치히로가 묻자, 아까부터 시선을 한 곳으로 향하고 있던 사쿠가 의아한 모습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멋쩍은 표정을 옅게 띠었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치히로의 내민 입술 사이로 힘없이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햄버거 가게의 단골이 된 지도 오래인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그런 질문을 하냐는 의문이 먼저. 그리고 햄버거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치히로를 거의 매번 가게로 데려오는 일에 대한 미안함이 다음.
따지고 보면 가게로 먼저 따라나선 쪽은 그녀였으니 후자에 대해 불만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햄버거는 여섯 달에 한 번 겨우 먹을까 말까 하는 치히로의 입장에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자주 사 먹는데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까지 겸하고 있으니 이제 사쿠에게는 햄버거가 밥보다도 익숙한 음식이 되었을 법도 한데,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출석 도장을 찍는 것일까.
“좋아하는 건 여러 번 먹어도 질리지 않으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다……는 느낌이려나.”
돌아오는 목소리에 치히로는 얕은 비음을 흘리며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이렇다 할 말을 예상한 건 아니지만, 듣고 나면 역시 사쿠답다는 생각이 들 만한 대답이다. 화제를 돌려 바니타스의 이야기를 꺼내자 금방 표정이 산뜻해지며 묘하게 텐션이 올라가는 것도 지극히 그다웠다. 그렇게 몇 번 말을 주고받았을까, 좀처럼 사람들이 빠질 것 같지 않았던 줄도 차츰 줄어들어 두 사람은 마침내 카운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앞에 서 있던 종업원이 익숙한 표정으로 사쿠를 맞았다.
“여어, 카가미. 오늘도 그 세트야?”
“네, 오오야마 씨. 피클은 빼고 부탁드려요.”
사쿠의 첨언에 오오야마라고 불린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씩 웃으며 기계의 액정을 두드렸다. 계산을 위해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던 순간, 사쿠의 옆에 서 있던 치히로가 입을 열었다.
“저도 같은 세트로 하나 주세요. 피클은 넣어 주시고요.”
이미 제 몫의 돈을 꺼내어 오오야마에게 건네는 치히로를 돌아보는 그의 얼굴은 의외라는 표정을 여실히 담고 있었다.
“평소에 햄버거 잘 안 먹잖아.”
“너 혼자 먹으면 심심할 것 같고, 게다가 요즘 또 행사 중이잖아. 나도 하나 정돈 얻어 볼까 해서.”
치히로가 가게의 한쪽 벽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곁눈질했다. 최근 한 캐릭터 회사와 콜라보하여 햄버거 세트를 사면 무작위로 캐릭터 인형을 주는 경품 행사를 알리는 내용의 포스터는 아까부터 사쿠가 열심히 보고 있던 것의 정체이기도 했다. 경품 모으기를 취미로 하는 그가 오늘도 햄버거를 사는 이유에는 분명 저것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포스터에서 시선을 떼어 다시 올려다 본 사쿠는 과연 본심을 들킨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알기 쉽다니까. 오랜 시간 동안 늘 어울려 온 소꿉친구로서의 자부심이 일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치히로는 그의 친숙한 미소와 마주하며 여상스런 웃음을 입에 걸었다.
계산을 마치고 주문한 세트를 받아들어 사람이 별로 없는 창가 자리에 마주 앉아 감자튀김을 하나 입에 넣으니 짭짤한 맛이 혀 전체로 금세 퍼졌다. 건강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극적인 맛이지만 막상 먹고 있을 때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금세 해치워 버리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햄버거는 먹는 둥 마는 둥 감자튀김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던 치히로의 시선이 문득 캐릭터 인형을 감싼 경품 포장지에 닿았다. 한창 먹던 것을 멈추고 기름기 묻은 손가락을 휴지로 닦은 후 포장지를 뜯어 안에 든 것을 꺼내 보니 반쪽 하트를 들고 있는 자그마한 강아지 인형이 손바닥 위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생각보다 귀엽네.”
“그러게. 이제까지 나온 행사 경품 중에서도 퀄리티가 좋은 편이고.”
치히로를 따라 포장지를 뜯은 사쿠가 만족스러운 미소로 제가 받은 경품을 들어 보였다. 그의 것은 미소를 짓고 있는 고양이 인형으로, 치히로의 강아지 인형이 들고 있는 하트의 다른 반쪽을 들고 있었다. 짝을 맞춰야 하는 경품이라는 걸까. 꽤나 상업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사쿠의 인형 옆에 제 인형을 놓아 보았다. 나란히 놓인 하트 조각 두 개가 마치 원래부터 하나였다는 것처럼 이가 깔끔하게 맞물려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함께 서서 커다란 하트를 들고 있는 모양새를 보며 치히로는 한쪽 손으로 턱을 괴었다.
“뭐랄까, 그냥 경품이라기보다는 커플한테나 어울리는 아이템 같은데.”
그렇게 내뱉으며 앞을 보노라면, 어째서인지 사쿠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보이며 치히로를 반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괜찮잖아. 우리도 커플인데.”
“……아.”
평소보다 분명하게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실없이 벌린 입술 사이로 더욱 싱거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어색한 기분이 피어올라 온몸을 간질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귀고 있었지…….”
지금 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카가미 사쿠라는 남자가, 단지 소꿉친구일 뿐만 아니라 연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사귀기 시작한 지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이렇게 꿈 같은 현실을 자각할 때마다 견딜 수 없는 근질거림이 마음을 쿡쿡 건드리곤 하니 말이다.
그보다도 이 미련한 대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치히로는 무의식 중에 대답을 뱉어 놓고서 스스로 경악했다. 몇 달째 사귀고 있는 와중에, 그것도 먼저 고백한 쪽이, 저희가 연인이라는 것을 한순간 잊어버린 꼴이라니 이보다 우스울 순 없다. 얼굴이며 귀가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화끈거리며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치히로는 필사적으로 사쿠의 시선을 피했다.
바로 다음 순간, 작게 터뜨린 웃음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사쿠 쪽으로 향하자 그가 치히로의 손을 잡고 제 손에 들려 있던 강아지 인형을 다시 쥐여 주었다. 긴 손가락이 그녀의 손바닥을 쓰다듬듯 감싸고 떨어지는 느낌이 오묘하다.
“모처럼 받았으니까 서로 가지고 있자. 연인답게.”
마지막 말을 유독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 것은 그녀만의 착각이었을까. 괜히 옆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다른 손으론 강아지 인형을 꼭 쥐고서 바라본 사쿠는 그녀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볼 때에만 짓는 화사한 표정 말이다. 얼굴을 뜨겁게 하던 열기가 머릿속까지 미쳐 화끈 달아올랐다. 치히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어이 사쿠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표정만 잠깐 보아도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건 소꿉친구의 특권이자 연인으로서는 참을 수 없이 부끄러운 점이기도 했다.
역시 알기 쉬워서 곤란해. 겨울 하늘의 은은한 햇빛 아래 길가를 지나는 인파에 스치듯 눈빛을 던지며 치히로는 생각했다.
그때, 저 멀리서 한 디저트 상점의 인공적인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날에도 어김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오고 가는 사람들을 쉴 새 없이 받고 내보내는 그곳은 주변의 어떤 곳보다도 활기가 넘쳐 보였다.
“저, 사쿠. 이거 다 먹고 나서 디저트 먹을 생각 있어?”
의식의 흐름처럼 질문을 뱉어낸 치히로의 눈은 이미 햄버거 가게의 유리창으로 내다보이는 한 곳에 붙박여 있었다.
***
모양 좋게 꼬아 올린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끝을 베어 문 치히로의 얼굴이 환하게 번졌다. 역시 짠맛보단 단맛이 입에 훨씬 맞는다. 적잖이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그녀를 내려다보던 사쿠가 물었다.
“춥지 않아?”
혹여나 감기에 걸리지 않을지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하긴 이 한겨울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아이스크림은 원래 겨울에 먹어야 더 맛있다잖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해 보아도 얼굴에 낀 근심은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남을 돌보기 좋아하는 성정이 이런 상황에서도 발하는 모양이다. 뭉툭해진 크림을 핥아 먹으며 사쿠가 들고 있는 와플을 쳐다보았다. 이런 날씨에 치히로처럼 아이스크림을 사 먹다가 정말 감기라도 들면 밴드 보컬로서는 치명적일 것이 분명했기에 그 대신에 고른 메뉴였다. 방금 구워 낸 탓에 뭉근한 김이 흐릿하게 올라오는 모양이 참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자연스럽게 속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에는 아이스크림 와플을 주문해야겠다고.
와플에 머물러 있는 치히로의 시선을 눈치 챈 듯 사쿠가 먹지 않은 쪽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먹어 볼래?”
“응.”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여 냉큼 대답을 하고 고개를 들어 그가 내민 와플의 한켠을 작게 물었다. 아이스크림으로 한창 차가워져 있던 입안에 뜨거운 와플과 달콤한 사과잼이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달달한 맛을 한껏 만끽하며 열심히 입을 움직이다가 짧은 웃음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사쿠가 아까와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어 버렸던가. 그의 앞에서 그러한 표정을 지었던 일이 이미 횟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치히로는 괜스레 머쓱한 마음이 들어 소매로 입가를 쓸어 보았다.
“맛있어?”
“엄청. 아이스크림이랑 잘 어울려.”
그러면서도 사쿠의 질문에는 꼬박꼬박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따뜻한 디저트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리는 발상을 떠올리게 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치히로 쪽에서 사쿠에게 콘을 내밀었다.
“와플만 먹으면 입안이 뜨거울 테니까, 사쿠도 먹어 봐.”
사쿠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여 아이스크림의 끄트머리를 베어 먹었다. 머리카락에 크림이 묻지 않도록 귀 뒤로 쓸어넘기는 모습이 순간 화보 잡지의 한 편 같다고 느꼈다. 청량한 내음이 한 차례 코끝을 스친 뒤 다시 멀어진 그는 슬며시 올라간 입매 끝을 손가락으로 훔치고 있었다.
“맛있네.”
“그렇지?”
맞장구에 가까운 의문형의 단어를 던지며 다시 한 번 아이스크림을 맛보다가 문득 깨달은 것은, 지금 먹은 곳이 방금 사쿠가 베어 문 부분이었다는 사소한 사실이었다. 그 작은 깨달음 하나로 생긴 파장은 아이스크림과 함께 찬찬히 평온해진 치히로의 마음을 또 뒤흔들었다. 간접키스 같은 것을 구차하게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라고 스스로도 생각하지만, 아까의 부끄러운 상황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지금은 얼굴이 다시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치히로는 주의를 돌리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화제를 던져 보려 했으나, 한 발 차이로 사쿠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얼굴, 또 빨개졌네.”
낮은 웃음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는 그를 향해 눈을 흘겼다.
“……놀리지 마.”
“미안, 역시 귀여워서.”
“귀엽지 않다니까 그러네.”
평소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달리 지금은 장난기마저 배어 있는 목소리는 분명 다른 사람에게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사쿠의 일면이었다. 그의 이런 모습을 치히로가 볼 수 있는 것이 소꿉친구이기 때문인지, 연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 때문인지 자신은 알 수 없었다.
한동안 입가에 띤 웃음을 지우지 않던 사쿠가 치히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사적으로 그 위에 제 손을 얹자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으로 깍지를 껴 단단히 붙잡아 온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손으로 맞잡아 전해져 오는 온기는 적당히 기분을 좋아지게 하여, 부러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얼굴도 천천히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다른 화제로 이야기가 넘어가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로 입술 끝에 닿는 아이스크림은 그 어느 때보다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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